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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은 퇴근길에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 헌책방을 찾았다. 요즘 그녀의 일상은 반복되는 회의와 서류 작업으로 가득했다. 사무실 창문 밖으로 스치는 바람 소리에 마음이 허전해지면, 수진은 헌책방을 찾곤 했다. 낡은 책 냄새와 책장에 쌓인 먼지까지도 어쩐지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책장을 둘러보던 수진의 눈길을 끈 것은 표지가 닳아 제목조차 희미해진 작은 책 한 권이었다. 표지를 쓰다듬으며 첫 장을 넘긴 수진은 묘하게 익숙한 따뜻함을 느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서 오래된 추억이 피어나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페이지 사이에 끼워진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쪽지를 꺼내 펼친 수진은 손글씨로 적힌 짧은 메시지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고 있다면, 나와 같은 사랑을 꿈꾸고 있는 걸까. 만나게 된다면, 그땐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누군가의 편지가 남겨져 있다니, 그것도 사랑에 관한 편지라니. 수진은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 이 편지는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몇십 년 전,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미와 설렘이 교차했다. 그날 이후 수진은 가끔 그 책을 다시 펼쳐 쪽지를 읽어보곤 했다. 일상에 지칠 때마다 그 편지는 마음속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며칠 후, 수진은 헌책방을 다시 찾아갔다. 답을 남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후라도 누군가 자신의 답장을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적 아닐까? 수진은 책 속에 자신의 쪽지를 끼워 넣었다.
"나 역시 같은 사랑을 꿈꾸고 있어요. 우리가 언젠가 마주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에게서 이 쪽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요."
그 뒤로 수진은 자주 그 헌책방을 찾았다. 그 책을 다시 열어 보는 순간이 어느새 그녀의 가장 큰 설렘이 되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책을 펼쳤을 때 수진은 거기 꽂혀 있는 새로운 쪽지를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읽었다.
"당신의 답장을 읽고 설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어요. 우리가 언젠가 마주친다면, 꼭 인사하고 싶네요."
쪽지에서 느껴지는 온화함에 수진은 가슴이 뛰었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책 속에 작은 편지를 남기며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지훈’이라고 밝혔고, 자신도 헌책방에 자주 들른다고 했다. 지훈은 자신의 일상과 관심사에 대해 자주 적어 주었고, 수진도 자신의 작은 행복과 고민들을 나누었다.
수진과 지훈은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이 점점 깊어져 갔다. 그와 나누는 이야기는 일상의 무게를 덜어 주었고, 어느새 그에 대한 감정은 설렘을 넘어 사랑으로 번져 갔다.
그리고 어느 날, 지훈은 쪽지 속에서 용기를 내어 고백을 남겼다.
"수진 씨, 당신을 만고 싶습니다. 혹시 서울에 계신다면, 12월의 해질녘에 청계천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진은 그를 만나겠다는 생각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다. 그녀는 고민 끝에 이렇게 답장을 남겼다.
"지훈 씨, 저도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12월의 청계천 다리에서 만나요. 약속해요."
설레는 마음으로 답을 남긴 후 며칠 뒤, 수진은 그의 쪽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쪽지를 펼친 순간 그녀는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았다.
"수진 씨, 당신이 2024년이라고 말한 것이 사실인가요? 저는 1924년에 살고 있습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우리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수진은 그들이 서로 다른 시대에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시대와는 100년 가까이 차이가 있는 남자와 마음을 나누었다니, 그녀는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수진의 마음속엔 여전히 그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남아 있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쪽지 속에서 서로의 시대를 이해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지훈은 서울의 옛 모습과 청계천의 그리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수진은 2024년의 서울 밤하늘과 도시의 불빛을 묘사하며 그 풍경을 함께 떠올리길 바랐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어도 두 사람의 마음은 점차 사랑으로 변해 갔다.
마지막으로 수진은 그에게 마지막 쪽지를 남겼다.
"지훈 씨, 내가 꿈에서라도 청계천 다리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때 당신을 보면 꼭 인사할게요. 당신과의 만남은 제게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거예요."
그날 밤, 그녀는 꿈속에서 청계천의 작은 다리를 걷고 있었다. 다리 건너편에 서 있는 남자, 바로 그 지훈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향해 걸어갔다. 꿈이었지만, 그의 따뜻한 눈빛 속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음을 느꼈다.
두 사람의 마음은 그 순간에 온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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